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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멸망한 까닭

관리자
2018-05-18
조회수 812


백제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왕과 귀족들이 치열하게 맞섰던 나라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흔히 옛날의 왕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어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렸던 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의자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무왕이 왕권을 강화한 것처럼 왕의 힘을 더욱 강화시켜서 신라와 싸워나갔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에도 나오는데 의자왕은 신라와 싸울 때 찔끔찔끔 땅을 점령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몇 십개씩 되는 성을 한 번에  뺐었습니다. 당시 백제와 신라는 원수중의 원수였습니다.

삼국사기의 내용 중에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리던 분이며 그만한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술과 여자에 빠진다니?...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첫째 아들인 부여효와 셋째 아들인 부여융의 권력싸움에 있었습니다. 

의자왕 초기의 태자는 부여융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가서 사비성이 포위되자 의자왕이 태자 효와 웅진성으로 피신했다라는 기록을 보면 태자는 부여효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럼 어떻게 태자인 부여융을 몰아내고 부여효가 태자가 되었을까요? 정변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의자왕은 신라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권력이 필요했습니다. 이 강력한 권력이라는 것은 고대 왕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의자왕은 이런 강한 권력을 위하여 좌평들을 귀양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방 관직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이에 귀족들은 반발을 하고 결국 의자왕의 나이가 환갑 정도일 때 정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는 의자왕 편에 서서 강한 왕권을 부르짖었던 부여융과 귀족들의 편에 서서 새로 태자가 된 부여효는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결국 부여효가 승리하게 되지만 그 시각 신라군과 당군은 백제로 쳐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잘못만이 아니라

첫째, 국가 왕실이 내분

당시 백제는 힘이 있는 큰 세력을 두 세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는 왕의 힘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자왕과 부여융 파, 두번째는 왕의 힘을 누르고 자신들의 힘을 키우려는 귀족들과 부여효 파가 있었습니다.

당시 백제에선 약 2년 동안 두 세력 사이에 갈등이 깊어져 서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틈을 타서 신라와 당나라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한 것이지요.

둘째, 귀족들의 배신과 권력투쟁 

당시 백제에는 계백, 흥수 같은 충신도 있었으나 임자, 충상, 상영 같은 배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라나 당나라에 협조하면서 백제가 망하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특히, 의자왕도 살아있고 공격 받지 않은 성에 많은 백성들과 병사들이 있어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나당연합군에 맞서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공산성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의자왕이 갑자기 항복합니다.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었는데 당나라 황족만이 무덤을 만들 수 있는 산에서 비석이 발견되어 웅진성의 성주가 당나라에 가서 아주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석의 내용으로 보아 웅진성의 성주가 당나라와 거래를 하고 의자왕을 넘겼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고구려와 왜의 뒤늦은 지원 

고구려 또한 자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주변정세를 돌볼 상황이 못 되었고 일본의 왜군은 백제의 마지막 전투에 많은 배와 병사들을 보냈지만 이미 백제의 의자왕은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갔고 백강 전투에서 일본은 크게 지게 됩니다.

백제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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