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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터 우물에서 발견된 유물

관리자
2018-05-29
조회수 846



경주 황룡사 남쪽 우물서 촌주 이름이 써있는 청동접시가 출토되었고, 고대도로 등 도시시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도 확인됐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경주 황룡사 남쪽담장 외곽 정비사업 부지에서 ‘달온심촌주(達)’라는 촌주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출토되었다. 

또한, 신라 시대 도로, 배수로 등의 도시시설과 황룡사의 터를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었다.

황룡사는 진흥왕 때 창건된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지구에 속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황룡사의 서남쪽 경계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이 우물에서 발견된 촌주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는 제사 때 사용한 토기 등과 함께 묻혔던 것으로 보아 황룡사의 의례행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우물 내부에서는 양쪽면이 편평하고 납작한 토기류, 중국백자편, 평기와, 청동제 손칼 등이 출토되었고,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밤, 복숭아, 잣 등의 씨앗껍질과 생선뼈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그리고 조사지역에서는 황룡사와 동궁 간 연결되는 동서도로와 황룡사 동쪽에서 분황사로 연결되는 남북도로가 확인되었다.

도로면에는 20∼30cm 정도의 굵은 돌을 깔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잔자갈을 깔아 노면으로 사용하였다. 

도로의 한쪽에는 너비 100cm, 깊이 40~100cm의 배수로를 설치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배수로를 메워 도로를 확장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황룡사는 습지를 매립하여 만든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남쪽에서 북쪽,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30〫 정도 경사지도록 흙을 교대로 다지면서 쌓았다. 

또한, 바닥에는 굵은 돌을 깔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자갈층을 반복하여 다져 놓아 배수처리를 하는 등 신라 시대 토목기술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흙을 쌓은 성토층 아래의 습지에서는 6세기 무렵의 토기편이 출토되고 있어 진흥왕 시기의 황룡사 창건 기록과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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